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쇼 로망 (문단 편집) == 특징 == [[일본]]에서 [[다이쇼 시대]]는 [[메이지 유신]] 이후 팽창한 국세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시기로, 이후 [[군국주의]]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대공황]]과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살기가 팍팍했던 [[쇼와 시대]] 초기의 [[1930년대]]~[[194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살기 좋은 시대였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문서도 참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이 시대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으며,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린 창작물들도 많이 나오는데 이를 '''다이쇼 로망'''이라고 한다.[* 유럽 문화권의 [[벨 에포크]]와 비슷한 느낌이다. 벨 에포크는 일본의 다이쇼 시대보다 약간 이른 [[19세기]] 중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시기를 바탕으로 한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와도 상당히 비슷하다. 국가적으로 위세를 떨쳤다는 것과 문화적으로 융성했다는 이유로 현대에는 곧잘 미화되곤 하지만, 실상은 식민지에 대한 수탈로 이룬 번영이었다는 점과 하층민들의 삶은 궁핍했다는 점 등에서 비슷하다. || [[파일:ca9f87b7f49f3cd48ace94193b75da28.jpg|width=100%]] || [[파일:DR20200121.jpg|width=100%]] || || 남성복 || 여성복 ||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서양화의 물결이 일본의 전통과 뒤섞여 '화양절충'(和洋折衷)이라는 특이한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냈다. 남자들은 중절모를 쓰고 양장을 입거나 일본 전통옷을 입은 채 영국의 [[인버네스]] 코트에서 유래한 톰비코트(トンビコート)를 두른 뒤 [[파나마 모자]]나 헌팅캡을 썼다. 멋내기로 수염을 기르기도 하였으며[*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적잖은 남성들은 수염을 밀고 다녔다. 전국시대 때 몇몇 사무라이들이 전투에 방해되지 않게 수염을 밀던 풍습이 민간에까지 퍼졌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1925년(다이쇼 14년) 긴자에서도 양장을 입은 비율이 겨우 1%에 불과[* 하야미 라센진, <군화와 전선> 중 일러스트컬럼2, p47, 길찾기]했으나, 짧은 [[기모노]]를 입고 그 위에 [[하카마]]를 걸친 후 부츠나 구두를 신은 하이칼라(ハイカラ)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교복에 있어서도 [[가쿠란]]과 [[세라복]]이 완전히 보급되진 않아서 메이지 시대부터 쓰이던 [[쇼세후쿠|서생복]][* 양복 와이셔츠에 일본식 외투인 나가기, 하카마, [[학생모]] 조합으로 이루어진 교복. 한국식으로 치면 양복 와이셔츠에 바지는 한복바지를 입고, 두루마기를 입는 형식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대한제국 시기에 두루마기와 학생모 조합으로 이루어진 비슷한 교복이 존재했다.]이나 기모노 교복[* 세일러복 도입 이전 여성용 교복으로 쓰였다. 한국으로 치면 [[흰 저고리 검은 치마]] 교복 정도에 대응한다.]이 혼용되었다. 이런 복식 스타일은 다이쇼 로망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데, 당시 [[게이샤]]들이 이 스타일로 사진을 찍기도 했을 정도. 또한 패션스타일을 머리부터 몸끝까지 서양풍으로 입었던 이들은 모던 보이/모던 걸로 불렸으며 다이쇼 로망의 대표적인 유행어이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모던뽀이/모던껄'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썼다. 당시 신문기사나 조선 문학을 보면 알수 있다. 하지만 동시기 일본의 주변 나라들은 식민 지배를 겪는 등 혼란기/암흑기였기 때문에[* 이 또한 벨 에포크와 비슷하다.] 일본에 피해를 입은 국가들 입장에선 다이쇼 로망을 소재로 다루는 것에 대한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일본 입장에서야 해당 작품들이 원래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컨텐츠인 만큼 아무래도 상관 없지 않냐는 반응이지만 제국주의를 건드리는 순간 주변국 입장에선 껄끄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본 우익들이 추구하는 바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인데, 그게 이 시기도 해당되기 때문. 다만 다이쇼 로망 자체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 라는 뜻은 내재되어 있지 않고, 괜히 말썽 일으키고 싶지 않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민감한 건 알아서 배제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일본 밖에서도 다이쇼 문물을 그저 신기하고 이국적인 풍물로 다루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일본은 좌익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다이쇼 로망은 벨 에포크가 그렇듯이 정황이나 시대 배경은 그렇게 자세히 묘사되지 않고, 기본적으로는 그 당시만의 독특한 패션과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일본의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다이쇼 로망이라고 하면 특유의 패션을 한 러브로망스 정도 밖에 떠올리지 않는다. 혹은 和モノ系라고 하는 패션과 건축 디자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본 내 노골적인 우익 미디어물들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다이쇼 시대]]보다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쇼와 시대]]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정리하자면, 일반적으로 일본 내에서 다이쇼 로망을 보는 관점은 한국에서 [[응답하라 시리즈]]에서와 같이 [[3저 호황]]~[[외환위기]] 이전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풍조를 상기하면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당대의 정치적 상황은 배제[* 80년대는 아예 군부 독재 시대였으며, 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살기 좋은 시대로 생각하던 것과 달리 정부가 재개발 명분으로 하층민을 강제로 쫓아내고,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여 노사갈등이 끊이질 않던 시대로, 고도성장기라는 밝은 겉모습과 달리 결코 낭만적인 시대는 아니었다. 결국은 [[벨 에포크]]처럼 시간이 지나며 어두운 면은 희석되고 밝은 부분만 추억보정이 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하고 일반인들의 생활상에 주목하며, 두 시대 모두 불안요소가 내재되어 있었고 결국 이후의 위기로 무너져버렸다는 점 등에서 유사하다. 물론 당대 일본은 엄연히 제국주의 국가라는 피지배국들에 대한 가해자의 입장이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다이쇼 로망을 [[과장]]+[[추억보정]]이라며, 실제 서민의 삶은 [[현실은 시궁창|현시창]]이었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아나키즘]] 운동이 이 시기 확산된 것은 그만큼 당시 많은 노동자가 빈곤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오싱]]이 있다.] 벨 에포크의 어둠과 마찬가지. 그래서 다이쇼 로망 창작물 중에는 졸부(나리킨)의 추태, 노사갈등과 파업, 사회주의/무정부주의 운동, 제국주의의 모순, 계속되는 [[군부]] 폭주의 조짐, [[조선]]의 독립운동, 중국의 [[신해혁명]] 등등을 포함해서 이러한 면도 함께 (예컨대 등장인물 중 하나가 사회주의 운동가거나, 중국 등에서 건너온 혁명가라는 식으로) 조명하거나, 아예 그쪽만 다룬 작품도 종종 있다. 비록 군부의 폭주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시체제때문에 오래가진 못했으나, 다이쇼 로망과 비슷하게 [[쇼와 시대]] 초기(1920년대 ~ 1930년대 초) 문화를 낭만적으로 그리는 풍조 역시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쇼와시대 초기 문화를 통틀어 '''쇼와 모던(昭和モダン)'''이라고 지칭한다. 한국의 창작물들 중에서 [[야인시대]] 1부(2002), [[경성 스캔들]](2007), [[모던 보이]](2008), [[박열(영화)|박열]](2017) 등이 다이쇼 시대와 동시대 배경인데, 다이쇼 시대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식민지 조선의 중심 도시는 경성이었기 때문에 당대 문화를 통틀어 [[경성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경성시대 배경 작품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다이쇼 시대를 상징하는 [[아나키스트]], 일본군경, 모던보이, [[나리킨]] 등 다이쇼 로망 필수요소가 대거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